문학소식,문학이야기·

로댕의 누드화

초록담장 2005. 2. 7. 22:57

 

 

오귀스트 로댕의 누드 (지난날이여 안녕)

 

신의 손을 지닌 인간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04-03-25 10:46:27

모든 예술가들은 천재라는 이름으로 시작합니다. 로댕은 천재가 아니었습니다. 보통사람의 손으로 조각이 시작되었지요. 그러나 그는 신의 손을 지닌 인간으로 재탄생 되었지요.오귀스트 로댕은 조각가로 알려져 있고 그의 조각은 위대합니다. 그러나 그의 누드화에 홀려 누드화만을 모아 보았습니다.

다리를 든 여인 무제


Nu aux jambes EcartEes (Nude with legs spread), circa 1900 - 1914
Graphite and watercolor on wove paper 19.3 x 20.8 cm
Achenbach Foundation for Graphic Arts purchase



"Elle semblait revenir..." (pg. 163) in the book Le Jardin

 des supplices (Garden of Torments) by Octave Mirbeau (Paris: Ambroise Vollard, 1902)., 1898
Lithograph on Japan paper overlaying lithograph (color)

on wove paper
Gift of the Reva and David Logan Foundation


베르나르의 평전에서 '로댕'을 언급하기를 평생 조각과 여인에만 매달렸던 이 거장의 삶 구석구석을 냉정한 시선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누드 '상'의 주제였던 육체적 욕망은 일평생 그를 추동하고 괴롭혔던 화두였다고 합니다.

정원에서 고뇌하다 무제



"Et le nom de Clara,..." (pg. 158) in the book Le Jardin

des supplices (Garden of Torments) by Octave Mirbeau (Paris: Ambroise Vollard, 1902)., 1898
Lithograph on Japan paper overlaying lithograph (color)

on wove paper
Image: 283 x 199 mm
Gift of the Reva and David Logan Foundation



"Une splendide crEature..." (pg. 9) in the book Le Jardin
des supplices (Garden of Torments) by Octave Mirbeau

(Paris: Ambroise Vollard, 1902)., 1898
Lithograph on Japan paper overlaying lithograph (color)

on wove paper
Image: 121 x 73 mm
Gift of the Reva and David Logan Foundation


로댕의 드로잉 작업은 조각작품의 준비단계 라기보다 드로잉 그 자체로도 독자적인 작업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많은 여성을 만났으며 그 많은 여성의 인체는 그가 창조해내는 가장 인간적인 모습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체의 유연한 움직임을 면밀하게 포착한 누드화를 보면, 그가 한때 수학을 잘하였던 수도사였다는 흥미로운 기록이 있습니다. 수도원에 가게된 경위는. 로댕이 22살이던 1862년 누이의 사망으로 로댕은 큰 충격을 받게 되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수도원 생횔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인 자주색치마의 댄서


Femme nue assise et de dos 1899
by Auguste Rodin


Dancer in Purple Skirt-non authentic,19th - 20th century graphite under watercolor 35.3 x 25.1cm
Gift of Alma de Bretteville Spreckels



오귀스트 로댕은 1840년 11월 12일 파리 아르바레트가 에서 내성적 성격의 소유자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14세가 될 때까지 집안의 골치거리로 아주 열등한 학생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로댕은 우연히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엮은 판화집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는데요.

그것은 로댕에게 예술가의 생을 좌우하게된 결정적 순간이었지요. 로댕의 조각은 그렇게 시작되었지만 그는 조각을 선택함으로서 사회적 장치인 제도라는 이름으로 그의 작업은 외면되었지요. 가난과 상처라는 예술가로서의 고된 일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로댕의 조각에 있어 "청동시대" 작품은 마치 인간이 숨쉬고 있는 듯한 사실감으로, 살아 있는 모델에서 직접 석고형을 뜬 것이 아니냐는 근거없는 비난과 의심을 받아야 했습니다. "청동시대" 이후 그는 '단테의 신곡- 지옥편의 제작으로 20세기의 문을 활작 열어버린 걸작 '지옥의 문'(1880~1900)이 탄생하게 되는데요. 또한 로댕은 20년을'지옥문'과 씨름했지만 작업은 미완으로 남겨두고 갔습니다.

베일을 든 여인 폭풍또는 파도


Nude Woman in the Movement of her Veils circa 1890
graphite, pen, inks, watercolour and gouache on paper
17,5 x 11 cm
D.4309
Auguste Rodin


La Tempete ou La Vague (The Tempest or The Wave)
circa1900?
graphite and watercolour on paper
32,6 x 23,6 cm


그는 전통조각을 탐구하기도 했지만 그가 표현해온 인간실존의 모습은 18세기이래 건축의 부속물로 취급했던 조각을 독립된 예술 영역으로 구축했습니다. 이것은 회화의 패러다임이 일어났던 시대(1800-1900)에 독립된 조각을 열어간 인간 로댕의 대서사시였지요.

그의 미술사적 업적은 한세기의 문을 열었지만 그는 사후에 평가받은 외로운 작가이기도 했습니다. 로댕은 뇌졸증의 후유증으로 1917년 11월 10일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누드 캄보디안댄서


Auguste Rodin
Female Nude, 1906


Cambodian Dancer Seated
by Auguste Rodin



<지옥의 문>은 1900년 파리박람회에 공개된 이후 로댕의 스튜디오에 석고상태로 남아있으며 한국 로댕갤러리에 있는 <지옥의 문>은 7번째 에디션입니다.

전 세계에는 7개의 로댕미술관에 <지옥의 문> 소장처가 있답니다.
(고로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로댕의 지옥의 문으로 치면 7번째 강대국이 된답니다.)
강대국,,,맞나요?

그림출처 :
allposters.com/galler
파리 로댕갤러리 musee-rodin.fr
오르세 미술관musee-orsay.fr/ORSAY/
서울 로댕갤러리 musee-rodin , kr/
필라델피아 로댕미술관

참고문헌
로댕-신의 손을 지닌 인간 : 엘렌 피네(이희재역)
로댕- 열화당 미술문고
로댕갤러리 홈페이지

음악:베르디의 춘희 中 지난날이여 안녕

March 24th 2004



칼럼니스트 지전 (
jjeonim75@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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껴앉고 있는 두 여인

 (1895-99년 경, 수채화, 파리 로댕 박물관 소장)















흑과 백의 두 누드 (1904년경, 수채화, 파리 로댕 박물관 소장)

흑인과 백인의 두 여인의 어우러진 모습에서 부드러운 화면의 대조를 보여 주고 있다.













6명의 캄보디안무용수 (1906년, 수채화, 파리 로댕박물관 소장)

1906년 로댕은 파리의 Pre-Catlan에서 있은 캄보디안 무용수들의 공연을 즐겁게 관람한 후 그녀들이 연습하는 장소로 가 무용수들의 모습을 많이 그렸다.















캄보디아 무용수 (1906년, 수채화, 파리 로댕 박물관 소장)

아름다운 춤동작을 보여 주고 있는 캄보디아 전통 무용수의 무용을 보고 그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한다.













캄보디아무용수 (1906년,수채화, 파리 로댕박물관 소장)

1906년 로댕은 파리의 Pre-Catlan에서 있은 캄보디아 무용수들의 공연을 즐겁게 관람한 나머지 그는 식민지 박람회에서의 공연을 위해 Marseilles로 떠나는 이 들을 따라다니며 무용수들의 동작을 스케치에 담곤 하였다.











누우드화 (1908년, 수채화, 파리 로댕 박물관소장)

로댕이 말년에 수없이 그린 누드화의 수채화 작품 중 하나이다. 1903년에 Cie'ment Janin은 로댕이 그리는 것을 보고 나서 그의 기법을 이렇게 설명했다. "판자 위에다 종이를 펴놓고 연필이나 펜을 들고, 그는 모델에게 언제나 불안정한 자세를 취하게 하고는 모델에서 눈을 떼지 않고 힘차게 그려 나간다. 처음 선들이 그려진 후에 로댕은 다시 손질을 하지만 그가 수정하는 것은 대개 덧 그리는데 그친다. 그리고 그가 칠하는 색채나 경계선을 넘어서 번지는 안료가 윤곽을 결합시킴과 동시에 확대되는 것에 그 밀도를 부여하게 된다"고 하였다.









앉아 있는 누우드 (1908년, 수채화, 파리 로댕 박물관 소장)

J.Cladel의 수장품으로 지금은 파리에 있는 로댕박물관에서 전시보관 중이다.







이사도라는 로뎅의 작업실을 순례하게 되는데, 그녀가 본 그의 첫인상은 키가작고, 어깨가 딱 벌어졌으며,
힘이 있어보였고, 빡빡밀은 머리에 턱수염이 유난히 많은 남자였다. 그녀는 사람들을 만날때마다(그가 우체부라할지라도)  춤을 춰주곤 했는데 예외없이 그 앞에서도 춤을 추었다.
로뎅은..순간 뜨거운 손으로그녀의 온몸을 더듬었다고 한다.(마치 점토덩이를 만지듯)
그녀는 로뎅의 불같은 손길을 느끼는 자신의 열망을 그에게 맡겨버리고 싶었으나 습성으로인해..순진하게 뿌리쳐버린것을.. 위대한 판신(神)인 로뎅에게 처녀를 바칠수있는 신성한 기회를 잃게한 자신의 아이같은 어리석음을 후회한다고 그녀의 자서전"이사도라이사도라"에 써놓았다. 그 이후 이사도라는 2년동안 그를 만나지 못했으나 이후에 로뎅은 그녀의 좋은 친구이자 스승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