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느끼며

[스크랩] 감동+감동=이 감동

초록담장 2006. 2. 25. 00:52
2005년 12월 6일 (화) 14:19  미디어다음
시각장애 꼬마 드러머와 그림자 동생 '감동'

네티즌 선정 '2005년 e-만나고 싶은 사람' 뽑힌 김지호-건욱 형제
앞 못보는 꼬마 음악가 형과 의사가 돼 형 고쳐주고 싶은 동생

미디어다음 / 글 = 오미정 기자, 사진 = 하정임 기자

올 한해 네티즌들에게 가장 큰 감동을 안긴 이는 누구일까. 네티즌들은 지난 10월 MBC ‘TV특종 놀라운 세상’에 출연한 김지호, 건욱 형제를 그 주인공으로 꼽았다. 미디어다음이 11월 17일부터 30일까지 다음 사용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2005 당신을 감동시킨, e-만나고 싶은 사람’ 온라인 투표에서 김지호, 건욱 형제가 총 1만 292표 가운데 2226표(21.6%)를 얻어 1위로 선정된 것.

열세 살 지호는 시각장애를 지닌 꼬마드러머, 아홉 살 건욱이는 그런 지호를 보살펴주는 동생이다. 어려운 환경에서 드러머의 꿈을 이어나가는 형과 그런 형을 곁에서 지켜주는 건욱이의 따뜻한 형제애에 네티즌들은 가슴을 열었다.


지호와 엄마 오승원 씨, 건욱이 (좌측부터)가 1위 선정 소식을 듣고 기뻐하고 있다. ⓒ미디어다음
미디어다음은 형제를 만나 이 같은 소식을 전했다. 지호와 건욱이는 이에 “기분이 너무 좋다”며 활짝 웃었다. 인터넷에서 자신들의 기사를 찾아보며 마냥 신기해하는 건욱이는 앞이 보이지 않는 형에게 재잘재잘 투표 내용과 결과를 설명하기도 했다.

형제의 아빠인 김형로 씨는 “좋게 봐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며 “네티즌들의 성원이 아이들이 큰 힘을 얻게 될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 씨는 또 “시각장애를 가진 지호가 음악가의 꿈을 키워나가는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미디어다음은 한 해 동안 독자들에게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킨 미디어다음 기사의 주인공 10명을 후보로 ‘2005 e-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을 뽑았다. 1위는 지호, 건욱 형제가 선정됐고 2위는 10년의 무명시절을 견뎌내고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 타이틀 롤을 맡아 호연을 펼친 탤런트 김명민(2162표. 21.0%)이 뽑혔다.

3, 4위는 모두 ‘지하철 영웅’들로 선로에 떨어진 아이를 구해낸 고등학생 김대현 군(1750표. 17.0%)과 시각장애인을 구하기 위해 너나할 것 없이 승강장으로 몰려 나와 지하철을 세운 서울시민들(1460표. 14.2%)이 선정됐다. 한국 축구의 희망을 보여준 축구대표팀 딕 아드보카트 감독(898표. 8.7%)과 지난 8년간 난치병 환자들의 삶과 희망을 보여준 KBS '병원 24시‘ 제작팀(792표. 7.7%)이 뒤를 이었다.

# 평일에는 학교 기숙사에.. 지호는 주말에만 집에 옵니다.

"요리 보고 조리 봐도 흠흠~, 알 수 없는 둘리 둘리~"

지호, 건욱이 형제를 만나기 위해 형제의 엄마 오승원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에서는 낭랑한 ‘아기공룡 둘리’ 주제가가 흘러나왔다. 1987년, 오 씨가 CM송 가수로 활동하던 시절 직접 부른 노래다. 자신의 노래를 컬러링으로 설정해 놓은 것이다.

오 씨에게 형제들의 소식을 네티즌들이 다시 보고 싶어 한다고 전하고 약속 시간을 잡았다.
[MBC 미방송분. 제작사 CAA 제공]

“제가 평일에는 일을 해야 해서요 밤 10시 넘어서야 집에 들어가요. 지호는 평일 날엔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해요. 주말에만 옵니다.”

어머니와 지호를 모두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주말 저녁뿐. 그 시간을 이용해 형제를 찾아가기로 했다.

# 집에서 지호를 돌보는 것은 동생 건욱이


시각장애를 가진 꼬마 드러머 지호()와 동생 건욱이() ⓒ미디어다음
여느 아이들이라면 밖에서 뛰어놀아도 시원치 않을 주말 저녁에 형제는 집에서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취재 때문에 놀지 못한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건욱이는 “형이 귀찮아해서 원래 잘 안 나가요”라고 대답한다. 선천성 녹내장으로 빛만 구분할 뿐 앞을 전혀 보지 못하는 지호에게 외출은 사치다.

불도 꺼져 있는 방에서 지호는 텍스트와 시스템을 모두 소리로 알려주는 컴퓨터 앞에서 혼자 글을 쓰고 있었다. 무엇을 쓰고 있는지 몰래 엿봤다. 엄마에게 쓰는 편지였다.

“사랑하는 엄마에게. 그동안 고집도 많이 부리고 엄마 말씀도 제대로 안들은 것 너무나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고집도 안 부리고 효도하는 착한 아들이 될게요. 제가 음악으로만 살아와서 이불 개기 같은 일 배우지도 못했습니다. 앞으론 음악만 하지 않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생활 능력도 키워나가서 효자가 될게요. 엄마 사랑해요.”

동생 건욱이는 컴퓨터를 하고 있는 지호에게 바짝 붙어 이것저것 간섭하고 있었다. 가끔 둘은 귓속말을 속삭이며 키득키득 웃었다. 무슨 말이 오가는지 통 얘기를 하지 않는 형제다.

엄마가 집에 없을 때 형을 돌보는 것은 순전히 건욱이다. 매주 금요일 오후에 학교 기숙사에서 돌아오는 형을 마중 나가는 것도 건욱이, 집에 돌아온 형에게 밥을 차려주는 것도 건욱이다. 이날 낮에는 형의 머리를 감겨줬다.

방송에 나가기 전과 후의 바뀐 점들을 물었다. 형제는 “별로 없다”고 싱겁게 대답했다. 첫 눈에 보기에도 지호, 건욱이는 방송에서 보여준 그대로의 삶을 하루하루 살고 있었다.

# 엄마와 함께 한 공연.. '너무 좋았어요'


지호, 건욱이네 집에 걸려있는 액자에는 지호가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미디어다음
주말을 이용해 형제를 만난 탓에 지호의 화려한 드럼 실력은 볼 수 없었다. 드럼이 학교에 있기 때문이다. 대신 지호는 지난 10월 방송된 MBC ‘TV특종 놀라운 세상’의 CD를 보여줬다.

방송 부분은 10여 분 안팎이지만 지호가 보여준 CD에는 30여 분짜리. 방송이 되지 않은 부분에는 지호의 솔로 드럼 장면이 담겨 있었다. 지호는 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지호는 “지금은 촬영할 때보다 훨씬 잘할 수 있다”고 즉석 손연주를 보여주기도 했다. 또 “방송에 드럼스틱을 제대로 잡지 않고 연주하는 모습이 나갔다”며 아쉬워도 했다.

이어 지호가 자랑스럽게 꺼내 보인 것은 지난 11월 8일 지호가 속한 ‘한빛 브라스 앙상블’의 제1회 정기 연주회 녹화 장면. 한빛 브라스 앙상블은 한빛 맹학교 재학생 30여 명으로 구성된 브라스(금관 악기) 합주단이다. 이날 한빛 브라스 앙상블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서울 로얄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공연했다.

대통령 내외가 참석했을 정도로 큰 무대에서 지호는 평소 갈고 닦은 드럼 실력을 멋지게 뽐냈따. 그러나 지호가 꼭 보여주고 싶었던 장면은 뒷부분에 있었다. 지호 엄마인 오승원 씨가 브라스 앙상블과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맞춰 ‘아기공룡 둘리’를 부르는 장면이다. 엄마와 아들이 한 무대에서 감동의 무대를 선보이자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때의 심정을 물었다. 지호는 “너무 좋았다”고 짧게만 대답했다. 하지만 그 화면을 보여주고 싶었던 데에는 ‘좋았던 감정’ 이상의 기쁨이 있었을 게 분명했다.

# 드럼과 피아노 연주, 노래실력까지..부모가 물려준 능력


지호가 피아노를 치면 건욱이는 어느샌가 옆에 앉아 연주를 거든다. ⓒ미디어다음
지호는 피아노 연주도 곧잘 한다. 클래식에서 재즈까지 지호는 다양한 멜로디를 자그마한 손끝에서 만들어냈다. 놀라운 것은 지호가 제대로 된 레슨을 한 번도 받은 일이 없다는 사실. 드럼과 피아노 연주는 학교 밴드부에서 배운 것이다. 악보 또한 볼 수 없는 지호는 듣는 소리를 기억했다가 연주한다. 그런데도 모든 곡들을 그럴듯하게 재현해 냈다.

시각을 사용할 수 없는 시각장애인들은 보통 청각이 보통사람들보다 예민한 편. 지호 역시 그렇다. 여기에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음악 능력이 더해져 지호의 ‘실력’이 만들어졌다.

지호 엄마 오승원 씨는 앞서 언급한 대로 CM송 가수. 84년 데뷔한 그는 ‘아기공룡 둘리’ 외에도 ‘떠돌이 까치’ 등의 주제가를 불렸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 등 TV 프로그램의 로고송도 부른 적이 있다. 지호의 아빠 김형로 씨 역시 음악인. 한양대 출신 중창단 ‘징검다리’ 4기에서 활동한 이력이 있다. 과거에는 음반 제작 등의 일도 했었다.

지난 9월 지호는 교내 가요제에 나가서 1등 상을 탔다. 윤도현의 ‘사랑했나봐’를 불렀다. 노래 솜씨까지 부모에게 물려받은 셈이다. 지호는 또 높낮이를 가진 소리는 어떤 음인지 모두 맞춰내는 능력도 있다. 동생 건욱이가 학교에서 만든 고무줄 가야금을 퉁기자 지호는 “그 음은 ‘미 플랫’이야”라고 응수한다.

# 어려운 형편이지만 희망 잃지 않는 형제


지호의 꿈은 '드러머', 건욱이의 꿈은 '의사'다. 형제의 꿈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미디어다음
지호의 꿈은 ‘드러머’다. 그런데 꿈을 이루기 전에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한국에는 지호와 같은 시각장애인이 음악가로 성공한 예가 드물어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싶지만 어려운 지호네 형편으로는 불가능한 일.

지호네 수입은 엄마 오승원 씨가 인근의 대형마트에서 일하며 버는 것이 전부다. 사업을 하다 빚을 진 아버지는 현재 직업이 없다.

지금 지호는 학교에서 적은 돈을 내고 음악을 배울 수 있지만 음악적으로 더 성장하려면 학교 밴드부 수업만으론 부족한 게 현실. 오승원 씨는 “지호가 형편 때문에 꿈을 접게 될까 봐 걱정”이라고 말한다.

엄마의 걱정을 옆에서 듣고 있던 지호는 “조금 더 자라면 악기 연주 아르바이트를 해 돈을 벌어야겠다”고 제법 의젓한 소리도 한다.

동생 건욱이의 꿈은 의사다. 이유는 간단했다. 형같이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주고 싶어서란다.

한국의 스티비 원더가 되고 싶은 소년과 형의 눈을 고쳐주고 싶은 동생. 이들 형제의 꿈이 이루질 수 있을까.

출처 : 감동+감동=이 감동
글쓴이 : 柏剛/박세문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