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시인 되고파요
나 무 / 이양하
초록담장
2004. 12. 30. 09:37
나무는 덕을 가졌다.
나무는 주어진 분수에 만족할 줄을 안다.
나무로 태어난 것을 탓하지 아니하고, 왜 여기 놓이고
저기 놓이지 않았는가를 말하지 아니한다.
등성이에 서면 햇살이 따사로올까, 골짜기에 내려서면
무리 좋을까 하여, 새로운 자리를 엿보는 일도 없다.
물과 흙과 태양의 아들로 물과 흙과 태양이 주는 대로 받고, 후박과 불만족을 말하지 아니한다.
이웃 친구의 처지에 눈떠보는 일도 없다.
소나무는 진달래를 내려다보되 깔보는 일이 없고,
진달래는 소나무를 우러러보되 부러워하는 일이 없다.
소나무는 소나무대로 스스로 족하고, 진달래대로 스스로 족하다.
나무는 고독하다.
나무는 모든 고독을 한다.
안개에 잠긴 아침을 저녁의 고독도 알고, 함박눈 펄펄
날리는 겨울 아침의 고독도 안다.
나무는 파리 옴짝 않는 한여름 대낮의 고독도 알고,
별 얼고 돌 우는 동짓달 한밤의 고독도 안다.
그러면서도 나무는 어디까지든지 고독에 견디고,
고독을 이기고, 또 고독을 즐긴다.